2007년 11월 25일.
만연산을 올랐다. 새벽 5시에 오르기 시작했던가.
자연을 담아보고 싶었는지,
사진의 묘함과 희열, 정지된 감정의 결과를 저장하기 어려워 했던 내가.
또, 무엇을 해보겠다며 오르나 싶었다.
새벽 찬공기와 무거운 몸이 더욱 후회를 불러왔던 기억이다.
정지된 영상이 아니어도
자연은 이미 정지됨을 보여주고 있었다.
증명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고개가 틀어지거나 눈을 깜빡거리는 경우,
전체적인 비율이나 각도, 피사체 일부의 초점이 안 맞아 '한번 더~'를 외치게 된다.
반면, 자연은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미미한 움직임들이 존재하여도,
언제나 정지된 영상처럼 자신을 내어준다.
초점 맞추기도 감도를 조절하기도 쉽다.
촬영하기 쉽다는 의미다.
나는, 그래서 어렵더라.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다.
정지된 장면과 움직임 없는 대상. 그것을 저장하는 것.
어렵고 어렵다. 사진기를 만지작 거린지, 25년이 지난 지금... 도. 어렵다.
무얼 잘 담아내는 감성도, 쓸모있는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단순하고 때론 바보처럼 그냥 찍어보는 게 내 방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못난 사진은 나름의 의미와 해석을 적절하게 칠해줘야.
버리지 않고 내 품에 두고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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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방향은 길이 없는 곳을 택했다.
길이 험하여 동이 트고 햇살이 나무나무 사이로 뻗어 내려올 시간이 되었지만,
무서웠다. 가끔은 말 없는 겁쟁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무서움을 누르기 위해 셔터를 눌러보았다.
그땐 이 사진이 으스스했다.
지금은 그저 그렇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표현하기 까다로운
요상스럽고 묘한 기분이었다.
그 요상스럽고 묘한 기분이 지금도 느껴진다.
자연을 담을 때마다 그렇다.
두렵고 어렵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창조물 앞에선 참으로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지만
자연을 담아내는 건, 아직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가장 자연스런 창조물 앞에 자연스럽지 못한 내 마음가짐은 고쳐지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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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아닌 그 무엇들은
참으로 적극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곤 한다.
두렵지도, 어렵지도, 잘못 담아내도 한없이 너그러운 그런 상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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